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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향수의 역학 관계

Дата публикации: 09-10-2026 01:00:00

향수는 그대로인데 맡는 사람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사랑하던 향이 하루아침에 역해지는 임신 중 향 취향의 미스터리. 우리가 고르는 화장품에는 저마다의 취향이 묻어나지만 향수만큼 개인의 정체성과 오래 연결되는 물건도 드물다. 매일 같은 립스틱을 바르지는 않아도 몇 년씩 하나의 향수를 고집하는 사람은 흔하고 자신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향’을 정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임신은 이렇게 오래 쌓아온 향의 취향마저 흔들어놓는다. 평소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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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향수의 역학 관계

향수는 그대로인데 맡는 사람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사랑하던 향이 하루아침에 역해지는 임신 중 향 취향의 미스터리.

우리가 고르는 화장품에는 저마다의 취향이 묻어나지만 향수만큼 개인의 정체성과 오래 연결되는 물건도 드물다. 매일 같은 립스틱을 바르지는 않아도 몇 년씩 하나의 향수를 고집하는 사람은 흔하고 자신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향’을 정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임신은 이렇게 오래 쌓아온 향의 취향마저 흔들어놓는다. 평소보다 냄새에 민감해지면서 익숙하던 향이 지나치게 진하거나 낯설게 느껴지고, 좋아하던 향수조차 갑자기 견디기 힘든 순간이 생긴다. 어제까지 ‘나의 향’이었던 향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진다. 미국 <얼루어> 뷰티 에디터 애니 블레이 테티(Annie Blay-Tettey)도 같은 경험을 했다. 많은 향수를 갖고 있던 그녀는 임신 초기 거의 모든 향에 속이 울렁거렸고 가장 좋아하던 마티에르 프리미에르 ‘바닐라 파우더’마저 외면하게 됐다고 터놓았다.

요즘 향을 즐기는 일은 향수 한 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샴푸와 헤어 미스트, 보디 워시와 로션, 스킨케어, 세탁 세제와 섬유 유연제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겹의 향을 몸에 얹는다. 서로 다른 제품을 겹쳐 자신만의 향을 만드는 레이어링과 기분이나 룩에 따라 향수를 골라 쓰는 ‘프래그런스 워드로브’가 익숙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임신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향의 취향을 순식간에 흔들어놓기도 한다.

현재 임신 중인 나스 뷰티 PR 장지원 과장은 향수뿐 아니라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향까지 하나둘 의식하게 됐다. 매일 사용하던 스킨케어 제품부터 치약의 강한 멘톨, 냉장고 속 음식 냄새, 심지어 남편의 체취까지 전보다 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편과 침대를 같이 쓰다 보니 요즘은 자기 전 샤워에 양치, 가글까지 해야 침대 취침이 가능해요. 냉장고 문도 입덧 때문에 열지 못해 밥하는 건 거의 남편 몫이 됐고요.” 이를 닦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이른바 ‘양치덧’도 생겼다. 예전에는 입안이 화할 정도로 개운한 치약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무향에 가까운 시린 이 치약을 쓴다. 식품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평소 맛과 향에 꽤 까다로운 친구는 한여름에 만삭이었다. 운동 삼아 집 앞 백화점을 자주 걸었는데 에스컬레이터 앞 향수 매장을 지날 때마다 여러 향수가 뒤섞여 밀려오는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입덧도 거의 없이 비교적 평온한 임신 기간을 보냈지만 향만큼은 달랐다. 마사지를 받을 때도 아로마 오일을 쓸 수 없었고 유일하게 괜찮았던 것은 향이 거의 없는 코코넛 오일이었다. 결국 집 안 디퓨저부터 향이 나는 제품 모두를 하나씩 치웠다. 출산 뒤에는 대부분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임신 당시 유독 싫었던 몇몇 향에는 여전히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금도 그 냄새를 맡으면 한발 물러서거나 코부터 막게 돼.” 평소 무심코 사용하던 제품을 하나둘 덜어내고 나서야 화장대와 욕실을 얼마나 많은 향이 채우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진행한 대규모 후각 조사에서 임신부 1만3,610명의 응답을 따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비임신 여성보다 향수와 코롱을 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히 ‘임신하면 코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냄새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지,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지 비교한 연구에서는 임신부에게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냄새를 이전보다 덜 유쾌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눈에 띄었다. “냄새 자체를 더 잘 감지한다기보다 냄새를 인지하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현재 연구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랑뜨산부인과 최예진 원장의 설명이다.

임신하면 몸속 호르몬 환경도 크게 달라진다. 임신 여부를 알려주는 호르몬으로 익숙한 hCG는 임신 초기에 빠르게 증가하고,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역시 임신이 진행되는 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꾸준히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이들 호르몬은 후각 변화와의 연관성이 오래전부터 연구돼왔다. 다만 ‘에스트로겐 수치가 올라가면 플로럴 향수가 싫어진다’처럼 간단한 공식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최예진 원장은 “hCG와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특정 호르몬을 후각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만큼 근거가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임신 중 후각 연구에서도 호르몬 수치와 후각 검사를 함께 비교한 자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원인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만큼 임신 후 향 취향이 움직이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아예 향을 지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전에는 관심 없던 향으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다. 유스트(Just)나 프라나롬(Pranarom) 같은 아로마 테라피 브랜드의 허브와 에센셜 오일을 새롭게 찾거나 존재감이 강한 향수 대신 스킨 센트나 퍼퓸 오일처럼 피부 가까이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향을 고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고려했다면 임신 후에는 지금 내 코에 편안한지가 먼저가 되는 거다. 향을 사용하는 이유도 달라진다. 외출 전 옷차림을 마무리하듯 향수를 뿌리던 사람이 잠들기 전 라벤더 향을 찾고, 기분을 환기하고 싶을 때 허브 향을 맡는다. 임신을 거치며 달라지는 것은 플로럴에서 우디로, 구르망에서 시트러스로 이동하는 향조의 취향만은 아닐지 모른다.

물론 ‘천연’이 곧 ‘임신 중 안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모든 아로마 테라피 제품이나 에센셜 오일이 임신 중 안전한 것은 아니니 사용 전 의료진에게 상의할 것을 권한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향을 찾는 것과 특정 성분이 임신 중 사용하기에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 향도 원하지 않는 시기도 있다. 이때 화장품 라벨에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프래그런스 프리(Fragrance-free)’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언센티드(Unscented)’와도 차이가 있다. 미국산부인과학회(ACOG)에 따르면 프래그런스 프리는 향료를 넣지 않은 제품을 뜻하는 반면, 언센티드 제품은 원료 자체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 성분이 사용될 수 있다. 임신 전에는 제품을 고르는 기준도 아니었던 작은 문구가 어느 날 가장 먼저 확인하는 조건이 된다. 출산했다고 예전의 향수 취향으로 곧장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준 친구는 아이를 낳은 지 2년이 지나고도 대부분의 향을 부담스러워했다. 다시 향수를 찾기 시작했을 때 선택한 건 향이 멀리 퍼지고 오래 남는 제품보다 아주 가벼운 시트러스였다. 그리고 이 향도 스카프나 재킷에 아주 소량 뿌린 뒤 부담스러워지는 순간 바로 풀거나 벗는다.

임신은 취향을 잠시 멈추게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향의 세계로 옮겨놓을 수도 있다. 오래 사랑하던 향수로 돌아가는 이도, 그 병을 끝내 다시 열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좋아하는 향조만이 아니다. 어떤 향을 가까이 두고 싶은지, 무엇을 편안하게 느끼는지, 향을 왜 사용하는지까지 새로 정해진다. 임신은 익숙하던 향의 기준을 지우고, 자신에게 맞는 냄새를 다시 고르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VK

전수연

뷰티 에디터
전수연
포토그래퍼
신용욱
프롭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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